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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가 위험하다 ②] 일회용 노동자에게 주거권·건강권은 없다

다른생각! 같은우리! 2021. 8. 5. 15:44

최근 굴삭기에 치여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주가 미등록 체류자라는 이유로 보상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다. 올해 상반기에만 40명이 중대재해로 사망할 정도로 ‘위험의 이주화’ 문제는 심각하다. 고용허가제 시행 17년이 됐지만 노동자들은 ‘무권리 상태’라고 하소연한다. 산재뿐만 아니라 임금체불, 사업장 변경 문제가 쌓여 있다.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 방향을 제시하는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일회용 노동자!’ 2009년 한국 이주노동자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 제목이다.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를 정의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에게 부여한 역할은 선주민이 기피하는 일자리에, 사업장을 옮길 수 없는 상태로 묶인 채 인력난을 ‘임시로’ 메워 주는 것이다. 이 저렴하고 유용한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확대재생산되면서 임시에서 영원으로 가고 있다. 취업기간 연장을 원하는 기업들의 요구에 정부가 화답하면서 연속 취업기간도 최장 9년8개월로 늘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그 기간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노동자는 여전히 일회용 노동자다.

일회용이라는 것은 부서지면 쉽게 버려도 된다는 것, 오래 사용하기 위해 갈고닦을 필요가 없다는 것, 고쳐 쓸 필요 없이 새 것으로 바꾸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일회용 노동자에게 주거권과 건강권은 애초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일회용 노동자 공급이라는 목적은 이주노동자는 인간이라는 사실과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켜 왔다. 임금체불·산업재해·폭언·폭행·성폭력처럼 각종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사유를 추가하는 임기응변식 대응을 해 왔다.

한파가 몰아치던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고용허가제 농업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씨가 비닐하우스로 덮은 조립식 패널 숙소에서 사망한 채 동료 노동자들에게 발견됐다. 이 사건은 다시 한번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문제를 부각시켰다.

고용노동부는 이번에도 사업장 변경 허용 사유에 사용자가 관련 법을 위반한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한 경우를 추가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사업주에게는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다소 강경한 방안이 함께 제시된 것이 이전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그러나 가설건축물만 아니면 된다는 형식적 기준도 문제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사업주 제공 숙소가 가설건축물인 경우는 60~70% 이상이다.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이 허용돼도 업종은 바꿀 수 없고, 구직신청기간 1개월, 구직기간 3개월을 넘기면 체류자격을 잃게 된다. 이런 제한을 함께 손보지 않는 이상 이주노동자들이 이 가설건축물에서 저 가설건축물로 가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을까?

노동부는 주거 개선방안과 함께 건강보험 제도 개선안도 함께 제시했다. 속헹씨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였다. 건강보험 제도는 외국국적 이주민 지역가입자에게 보험료부터 보험급여까지 전 방위적인 차별을 하고 있다. 입국 후 6개월이 지나야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소득과 재산에 무관하게 전년도 평균보험료(2021년 13만1천790원) 이상을 내야 하며, 보험료를 선납해야 하고, 납부일을 하루라도 넘기면 보험 급여를 받을 수 없다. 취약계층에 대한 건강보험료 할인이나 지원은 모두 적용 제외된다.

속헹씨는 정부와 정부 간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공식적으로 도입된 이주노동자였다. 그런데 왜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되지 못하고 지역가입자가 됐을까?

농업이나 어업 사업장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아도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사업장 노동자의 직장가입을 받아 주지 않는다. 그래서 2019년 이주민의 지역건강보험이 의무화되기 전 농·어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다수는 건강보험이 없었다. 의무화 이후에는 지역가입자로 당연가입돼 임금에 비해 턱없이 높은 보험료를 납부하게 됐다.

어쨌든 속헹씨는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병원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 몰라서,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 두려워서,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서, 병원비가 부담스러워서, 사업주가 허락하지 않아서, 때로는 병원에 도달할 교통수단이 없어서, 조용히 병을 키운 수많은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이 속헹씨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정부 대책은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지역가입자라도 입국 즉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농·어촌 지역 건강보험료 경감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직장가입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 대상을 고용허가제(E-9) 노동자만으로 한정해 같은 처지에 있는 선원(E-10) 이주노동자, 방문취업(H-2) 이주노동자, 다양한 체류자격으로 농·어촌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제외했다.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이주노동자 운동의 역사는 노동자로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고 고용허가제는 형식적이나마 이주노동자를 법적 노동자로 인정한 제도였다. 그러나 일회용 노동자 공급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는 한 그 한계는 명백할 뿐이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